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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대 기독교인으로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재벌 3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부와 권력을 당연히 그저 편하게 누리면 된다고 생각하듯이, 저의 믿음 또한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주어진 믿음이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부모님의 신앙생활을 따르고,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생활하며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특히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고,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봉사를 했습니다. 교회 어른들과 목회자분들은 그런 우리를 보면서 믿음이 좋다 칭찬해주셨고, 전 그런 칭찬의 인정들이 제 믿음의 척도라 생각하며 내 믿음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무지한 자부심으로 유지해오던 신앙생활은, 학생부를 졸업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각자의 사정으로 친구들과 멀리 떨어지면서, 함께 즐겁게 하던 봉사가 혼자서 해내야 되는 일이 되었고, 이 일에는 무거운 책임감까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하기에 참석해야 될 예배도 행사도 많았고, 그것을 참석하지 않으면 책임감 없다는 지적을 듣게 됐습니다.

인정과 칭찬이 믿음의 척도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지적들은 저의 믿음이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고, 믿음이 연약해 질수록 자존감도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그저 하나님은 부모님의 하나님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나는 자식 된 도리로 그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타의로 버티는 신앙생활이 되어갔습니다.

 

버티는 신앙생활에서의 갈등은 내면의 갈등 또한 심화시켰습니다.

착한 딸로 살아오던 저는 그냥 나 자신 김지인으로 살고 싶어졌고, 돌아보니 착한 딸 말고도 수많은 관계의 가면 속에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졸업 후 해외로 탈출을 감행했고 불편한 관계들을 정리했습니다.

정리된 관계 중에는 당연히 교회 공동체도 포함되었고, 그때부터 주일은 나만의 시간으로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지냈습니다.

 

 

종교의 자유 속에서 바라본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아닌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말은 항상 겸손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인정을 위한 열심과 그 열심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가르침을, 세상의 것은 나쁘니 차별해야 된다는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 이렇게 기독교라는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우물 안에서 신앙생활이 아닌 교회생활을 해왔었던 거였고, 저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 의미 없는 생활을 하게 만든 교회가 싫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면 하나님을 떠나지만 저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아주 열심히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비판했습니다. 나의 삶과 믿음에 대해, 교회의 원칙에 대해, 성경에 대해, 나중에는 날씨, 교통체증 등 정말 쓸데없는 것까지 딴지 걸며 따졌습니다.

 

그렇게 따지며 땍땍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하나님께서는 저의 탈출을 중단시키셨습니다. 탈출을 유지 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하셨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끌려 귀국하게 됐습니다.

 

귀국 후 저의 신체, 심리, 신앙 모든 것은 최악으로 변해갔습니다.

심한 과체중이 되어 돌아온 저를 바라보는 가족 및 사람들의 시선은 저를 패배자로 보고 있었고, 그런 시선들로 인해 제 내면은 우울과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드신 하나님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내 삶 속에서 차단하려고 했고, 만일 저를 사랑한다면 하루 빨리 제가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요 근래 등장한 이론 중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전 이 시기에 소중히 아끼고 아껴두던 저의 지랄 중 80%를 하나님과 부모님께 분출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주어진 총량을 분출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여러 상황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지명해서 불렀고 너는 내것이다... 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너에게 난 김지인의 하나님이다,

너가 혼자 있고 싶어도 단 한 번도 너를 혼자 둔적 없고, 모든 순간에 내가 함께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지속적인 위로와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로 저는 조금씩 회복해갔고, 훈련을 통한 이 회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어린시절 모세가 광야에서 40년간 훈련받았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고집이 강하면 40년이나 걸렸을까 했는데, 현재의 저를 보면 40년 만에 이뤄낸 모세가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이제 훈련 10년차입니다. 계속해서 훈련되어질 것이고 성장 할 것입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과정 중에 제게 남은 지랄 20%를 소진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나의 하나님이 저를 지명하여 부르신 이유와 부르심의 목적을 알고 그 부르심에 사용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이 나눔을 준비하면서 저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경험한 저의 아픔, 갈등, 방황을 포함한 모든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었기에, 소중했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하나님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긴 시간과 여러 경험 속에서도 단 한번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강력한 각인은,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어 가능했고, 그 사랑의 원천인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았기에 감사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회는 이번 한번으로 아주 많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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