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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들어가는 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버려야할 것 가운데 하나는 편견입니다. 편견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실천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또 편견만큼 버리기 힘든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편견을 갖고 있으면 올바른 분별이 어려워지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편견때문에 하나님께 저항하고 자기를 주장했습니다.

 

 

왜 요나는 분노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요나는 니느웨가 자신이 선포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돌이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을 받게 되자 심하게 분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하지만 이방민족이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적대국의 수도 니느웨는 멸망당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유대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사고가 요나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저항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2절과 3절의 기도내용을 살펴보면 라는 단어가 무려 5(히브리원어로는 9)가 나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요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고 자기를 고집하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런 요나를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실물교육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깨우치기 위하여 박넝쿨을 준비했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고생하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만들어 그늘이 되게 하사 위로해 주셨고 또 벌레로 갉아먹게 하사 시들게 하심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질문과 우리의 대답은?

하나님은 박 넝쿨로 인하여 분노하는 요나의 행동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지적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 말은 그런데 너는 왜 느니웨 백성이 망하는 것에 대해서는 슬픔과 연민을 느끼지 않느냐하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박 넝쿨을 아끼는 네 심정을 먼저 살펴 보아라. 그리고 니느웨 백성을 아끼는 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아라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편견에 빠져 너무나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는 요나의 모습이, 하나님의 말씀이 늘 우리 곁에 있는데도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아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이 물음에 정직하고 올바른 대답으로 하나님을 섬겨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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