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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들어가는 말

우리는 코로나 판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예전처럼 함께 모여서 늘 하던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예배가 무엇인지, 내가 지금까지 드렸던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고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배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과 그 동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미가선지자는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에는 세 가지 요소, 즉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가르키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 200번 이상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 미쉬파트는 인간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미쉬파트)”해야한다고 경고합니다. 인종이나 사회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든지 똑같은 죄를 지었으면 동일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구약성경에서는 이 말이 쓰일 때마다 이른바 4대 취약계층인 과부, 고아, 나그네와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라는 의미로 미쉬파트라는 말이 거듭 사용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여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7:9-10)

 

 

고대 근동지방의 농경사회에서 이 네 그룹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도 최저생활을 근근히 이어갔는데, 기근이나 전쟁, 가벼운 사회적 불안이 닥치기만해도 당장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지경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적용을 한다면 난민, 이주 노동자, 노숙인, 배우자 없이 혼자 자녀를 키우는 편부모, 독거노인등이 이러한 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집단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한 사회의 미쉬파트(또는 정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됨을 가르켜 줍니다. 어떤 식으로든 취약계층에 속하는 이들을 외면하는 처사는 자비와 자선의 부족이라는 차원을 넘어 정의, 곧 미쉬파트를 짓밟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사회경제적인 약자들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분이며,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정의를 행하라는 말과 인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무차별적 은혜와 동정을 의미합니다. 헤세드가 마음가짐이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미쉬파트는 행동을 강조합니다. 인자(헤세드)는 정의 원천이자 기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려면 반드시 인자를 마음에 품고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행한다는 것은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그 분이 원하고 좋아하시는 일에 신경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누가복음 923절에서 주님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져야할 자기 책임을 성실하게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와 인자를 실천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매일 매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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